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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드래곤즈 20기 김도윤 2019.04

by HUEMONEY 2020. 4. 2.

이름 : 김도윤 20기 
소속 : 거도산업 
취미 : 와이프 생각하기 
주요 작업 : 사랑꾼

 

Q1. 미식축구부에 가입하게 된 입부동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미식축구부 안들어오고 유도부를 들어가게 되었는데 15기 형들이 앞에서 꼬신다고해야하나? 저는 계속 유도할라고 했는데 학교 생활하다가 유도부를 잘 안 가게 되었어요. 3월 말인가 4월달 되가지고 유도부도 안찾고 그래서 미식축구부 15기 형들이 계속 챙겨주더라고요. 그래서 가입하게 되었어요. 들어가는 첫날 우리 ‘여차’라고 있는데 2기 정환진 감독님이 계신곳으로 놀러갔었죠. 그때 우리 MT처럼 오자마자 놀러갔었죠. 

 

Q2. 미식축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글로 못남길게 너무 많으니깐! 집사람도 보고해서... 불법적이고 그런게 많아서..좋을건 없고 시합 때 에피소드는 2007년도 타이거볼 결승때 마지막 시합이었는데 이기면 김치볼 가는 경우였는데. 그때 1쿼러백 2쿼러백 지태하고 경래행님 다 다쳐서 3번째 쿼러백인 방금 제대한 노평두가 와가지고 완전히 이길 수 있는 게임이었는데 패스가 안되니깐 라이트앤드런,,,, 레프트엔드런,,, 그래서 끝에서 끝까지 다 밀고 갔는데 끝에 힘이 없어가지고 졌죠. 그때 한골 차이가 안 났었다. 그래서 그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나머지 에피소드도 많은데 그건 술자리에서 하는거밖에 없네요.

 

Q3. 가장 기억에 남는 합숙은?

다들 비슷하겠지만 1학년 때 쳬력도 안되니깐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침에는 항상 로드웍을 하니깐 그때 제주도에서 어촌계 한 바퀴 돌면서 내가 쳐지니깐 14기 순제형님이 끝에서 끝까지 뛰었줬지. 그때 한 시간 반인가 두 시간 뛰었었다. 뛸라고 뛴건 아닌데 이렇게 삭삭 걸어가고 있는데 옆에 경찰차 붙고 ㅋㅋㅋㅋ 아침 일찍 뛰러가니깐 그날 두시간 정도 뛰니깐 학생들 등교하는 시간이더라고.. 경찰이 “길에서 뛰면 안돼요”하면서 붙었었다. 그때 숙소를 들어가니깐 그 시절에 정환진감독님이랑 박창훈코치님이 내가 탈출할까봐 감시하고 있었는데 나는 로드웍 뛰고 와서 힘들어서 할 생각도 없었는데  ‘아 죽겠다 못움직이겠다’ 이러고 있었다.  탈출할 생각 없었는데..... 전혀 신경 안쓰던 다른 동기들은 탈출했었다. 그때는 짐은 다 놔두고 팬티바람으로 다 도망을 갔다. 

 

Q4. 오비회장을 했었을 때 느낀 점과 오비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처음에 오비회장을 할 때 다른 형들이 ‘오비회장 힘들낀데...’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근데 회장이라고 느낀 점 보다는 원래 오비회가 불신(?)있으니깐. 오비들이 회비도 잘 안내고 참여가 많이 부족해서 힘들었다, 그래도 그때 다짐은 ‘오비 회비라도 잘 걷어보자, 참여도라도 높여보자’ 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해도 결국 낼사람은 내고 안낼사람은 안내더라.

오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마음적으로도 응원 할 수도 있고 물질적으로도 응원 할 수 있는데 그런걸 하면 표를 내줬으면 좋겠다. 조용히 음지에서 하지말고 양지에서. 왜냐하면 양지에서 해야 사람들이 알고 ‘아 저 형도 저렇게 와이비를 도와주네, 저 동생도 그러네 내 동기도 그랬네’ 이렇게 말이라도 나온다. 그러면 ‘나도 나와서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할껀데, 어떤 후배는 ‘저는 운동한번 올라와서 밥이라도 한번 살랍니다’ 이러는 친구들도 있고. 드러나게끔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오비끼리 ‘와이비에게 뭐 해줄 수 없나’ 이렇게 생각할건데 전혀 모르게 넘어가버리면 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아 이거 딴사람도 안하는데 나도 가만히 있어야겠다’ 라고 생각을 많이 한다. 

 

 

Q5. 요즘 느끼시는 경성대 드래곤즈의 분위기는 어떠신지?

분위기는 좋고 다른 학교 오비들도 이야기 들어보면 ‘경성대 잘한다’라고 많이 한다. 많이 바뀐거 같은데 선수들도 많이 들어오고 내가 중고참쯤 됬을 때, 지금 제일 잘하는 학교가 일본으로 합숙 가고 많이 그랬었다, 다른 학교들은 ‘뭐 이상한 짓 한다’ 이렇게 생각을 했다. 또 옛날에는 레더 연습 같은걸 안 했었다. 우리는 ‘레더는 무슨, 라다 라다’ 이러면서 웃긴다고 그랬었다. 그래도 나는 요즘 보면서 이렇게 꾸준히 한다면 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잘하고 있다. 이렇게 꾸준히 한다면 예전에 경성대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거 같다.  

 

Q6. YB, YG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살아오면서 미식축구할 때 20대가 가장 열정적이고 뭐든지 끓어오르는 시기인거 같다. 이제 그 시기가 지나 같은 또래의 친구들을 보니 20대 때 내가 가진 추억이 없다. 우리는 추억을 많이 만들고 좋았다. 근데 그게 다른 이유가 될 수도 있고 핑계가 될 수 있다. 잠시 떠나는 친구들이 많았다. 떠나고 나면 나중에 후회를 많이 할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갔다가 돌아온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후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물론 1년을 빨리 사회에 진출하는 것 보다(나도 아직 젊지만), 내가 살면서 사회생활을 해보니 1년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다. 앞으로 죽을때까지 과정을 보면 엄청나게 ‘집안에 생계가 힘들다, 1년에 한 번 뿐인 시험이 있다,’ 뭐 이렇게 운동을 쉬는게 아니라면, 잠깐 떠나거나 쉴 때 이야기 해놓어라. ‘제가 잠깐 1년 다녀오겠습니다. 대신 돌아올 때 멋지게 돌아오겠습니다.’라고 전달을 해주어라. 1년 쉬고 쉽게 못 돌아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20대 때는 정말 좋았던 때니깐 나중에 추억거리도 많다. 아까 이야기 못했던 에피소드도 많다. 그런게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는 그랬지’ 이런 게 많다. 한해 위에 몇해 위에 같이 운동했던 형님들이랑 술 한잔 하는 것도 추억이다. 

 

Q7. 마지막으로 월간 용광로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지금 네 번째죠? 인터뷰가 늦었다고 생각이 들고...개인 인터뷰가(웃음). 이거 한다고 미리 준비할라고 보고 왔었는데 첫 번째 김성훈감독 인정하고, 두 번째 태영이형님도 필리핀 갔었으니깐 인정하고, 세 번째 매니저 코치 인정하고, 많이 늦은것 같긴 한데(웃음). 옛날에는 ‘등용지’라고 있었는데 당연히 세월이 지나면서 퀄리티는 높여지는게 맞는데 지금 용광로 보니깐 ‘정말 잘 만들었다, 일반 잡지에 버금간다’라고 생각을 했다. 말은 안하지만 오비들도 보고 잘만들었다고 생각하고 표현못하는 사람들도 많고 응원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계속 꾸준하게 처음 시작하는것도 어렵지만 유지하는게 어려우니깐, 언제까지할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해줬으면 좋겠어요. 다음 세대에도 물려줘서 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