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정환진
기수 : 드래곤즈 2기
소속 : 드래곤즈OB
전공 : 경성대학교 체육학과
Q1. 드래곤즈에 입부하게 된 계기는?
정환진 : 어릴 때, 부산 미군부대 안에 집이 있었다. 그때 TV로 NFL 미식축구를 처음 봤었다. 그걸 보고 난 후, 학교 입학식 하는 날 미식축구 신입부원 모집하는 곳에서 잡혔다. 그때 키도 크고 덩치가 커서 잡혔던 것 같다. 그때 공 던져보라고 해서 던졌는데 잘나갔다. 그래서 선배들이 미식축구 해보라고 해서 한다고 했었지. 사실 학교는 별로 안가고 싶었으니깐. 처음 81학번 경제학과 입학을 하고 미식축구를 더 하고 싶어서 86학번 체육학과로 다시 입학했다. 미식축구를 군대 포함해서 10년 정도 했다.
Q2.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정환진 : 시합도 많이 하고 합숙도 많이 했다. 아무래도 가장 힘든 기억은 합숙 때 다른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아침운동 끝나면 반찬도 없으니깐 마가린, 간장에 밥 비벼먹고 그랬다. 그리고 바닷가 앞에서 담치(홍합)도 따서 먹고 남의 과수원가서 복숭아 몰래 따먹으면서 끼니를 때웠다. 근데 합숙 때 술은 먹었는데 어떻게 먹었는지 몰라(웃음)....... 아무래도 1학년 때 동기들이랑 합숙했던 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2학년 때 합숙을 도망갔었다. 합숙 도망가서 친구들이랑 놀러가려고 사상터미널에 갔는데 하필 합숙 가는 날이랑 겹쳤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합숙에 끌려갔다.
Q3. 미식축구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나. 가슴에 항상 미식축구가 있으니깐. 항상 그립고 보고 싶다. 선수생활 10년, 경성대 감독 10년, 신라대 감독 5년 총 25년을 했다.
Q4. 드래곤즈 감독을 맡게 된 계기는?
정환진 : 좀 슬픈 이야기다. 나는 대학을 두 번 들어가서 동기들이랑 후배들도 많이 졸업한 상태였고 뒤늦게 졸업을 하고 바로 결혼을 했었다. 그때 4기 이창화가 감독을 맡고 있었는데 애들이랑 감독이랑 서로 안 맞았다. 코칭하는 부분에서 트러블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그때 합숙을 단체로 탈출을 했다. 그래서 선수들이 나한테 감독을 해달라고 찾아왔었다. 하지만 나는 ‘안 돼, 씨XX아’ 그랬다. 그때 먹고 살아야하고 자식들도 챙겨야하니깐 어려웠었다. 그래서 OB들이 우리 집에 와서 다시 감독 투표를 했다. 그런데 내가 돼버려서 ‘그럼 1년만 맡아줄게’하고 감독생활 1년하고 다른 사람이 넘겨줬었다. 그런데 또 애들이 탈출을 해서 찾아왔었다. 그때 느낀 게 ‘운명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감독을 10년 정도 계속 했던 것 같다. 91년도부터 2000년대까지 하면서 그때 박창훈 단장도 미식축구를 좋아하니깐 같이 코치랑 감독을 하게 되었다.
Q5. 감독시절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무엇인가요?
정환진 : 상당히 어려웠지. 지금도 김해에서 살고 있지만 결혼하고 몇 개월 있다가 직장도 때려치우고 김해 근처 땅을 사서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서 키웠다. 그때 큰 개를 키우는 사업을 하려고 들어갔다. 근데 감독이었으니깐 트럭을 끌고 김해에서 경성대까지 출퇴근을 했다. 근데 수입이 없었으니깐 첫 해는 감독 월급이 조교 월급이어서 30만원도 안 됐다. 그 월급도 밑에 후배한테 넘겨줬다. 나는 1년만 한다고 했었으니깐. 그렇게 사업을 하다보니깐 경제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첫 사업을 6개월 만에 폭망했지(웃음).
Q6. 그런데도 계속 감독을 하신 이유가 있나요?
정환진 : 할 사람이 없었다. 누가 그 월급 받고 하겠나. 졸업생 중에 동기들도 사회로 나가서 자리 잡고 가정을 꾸린다고 그랬다. 우리는 시험기간 말고 다 운동을 했고, 경기를 하러 가면 다른 타 지역에 일주일씩 있다 보니깐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이 누가 할 수 있을까. 초대 강인호 감독은 원래 돈이 많으니깐 가능했었지. 재미삼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어. 그리고 우리가 운동 할 때 장비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시합 가서 체스트를 훔치기도 했다. 그래도 갈비뼈 여러 번 부러졌다. 내가 감독할 때, 박경규 감독님이 미식축구 장비를 팔고 있어서 내가 처음으로 감독으로 돈 벌어서 우리 팀에 미국 유니폼을 입혔었다. 피츠버그 스틸러스 유니폼을 입히고 장비도 샀었다. 그래도 팀에 애정이 있기 때문에 계속 할 수 있었다.
Q7. 미식축구를 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나요?
정환진 : 장비를 입을 때 ‘이제 죽자’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인생을 살아오면서 힘들었다. 그래서 시합장에서 죽기 살기로 했으니깐 우리가 잘했다. 서울 시합에 갔는데 우리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생팀이었고 서울에는 역사가 오래된 학교가 많았다. 그렇게 시합하기 전 인사를 하는데 서울 팀이 ‘우리는 머리로 해’라며 자기들은 머리가 똑똑하다고 기고만장 했었다. 그래서 그 시합 때 죽였지. 졸업하고 OB팀이 생기면서 서울 쪽에서 경성대 OB팀이 시합에서 졌었다. 그래서 열이 받았지. 그때 집이 해운대라서 뒤에 있는 장산을 매일 올라갔다. 그러고 1년 뒤에 다시 시합을 나갔지. 그때 서울대학교를 만나서 전반전에 60점을 찍을 각오로 갔는데 40점을 찍었지. 내 별명이 고구마인데 그때 ‘고구마 작전’이 잘 먹혔다. 그런데 그때 전반 끝나고 서울대가 기권해버렸다. 기권을 해버리면 1:0이 되버리기 때문에. 그래서 그때 기권을 해버려서 기록이 안 남아있다. 정말 아쉬웠다. 그때 알았지. 미식축구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거라고.
Q8. 앞으로 감독을 맡게 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정환진 : 어제 협회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감독이라는 게 완장만 채우면 갑질하려고 하면 감독이 아니다. 김밥 안에 어묵, 우엉, 단무지, 밥도 고슬고슬 해야 하고 소금, 참기름도 넣어야한다. 따로 먹으면 맛이 없잖아? 그걸 잘 넣어서 잘 싸는 사람이 바로 감독이다. 그걸 잘못 만들면 터지거나 욕먹는다고. 김밥이 바로 팀이다. 그걸 잘 말아서 조화롭게 만들고 각자 입에 쏙 들어가게 만드는 게 감독이다. 근데 미식축구를 좀 더 나은 기술을 공부해봤자 한국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은 없어. 쓸 수 있는 환경이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대부분의 감독들은 이기려도 게임을 한다. 하지만 이기려고 게임을 하면 안 된다. 그건 감독 자신이 이기는 거지 팀이 이기는 게 아니다. 감독 본인이 스포트라이트 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 I can do it! You can do it! We can do it! 그래서 감독은 선수 하나하나가 ‘I can do it’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Q9. 드래곤즈 YB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
정환진 : 열심히 해야지. 이왕 장비를 입으면 최선을 다하고. 미식축구를 아무나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선택했으면 끝장을 내야한다. 여기서 어영부영하면 사회에 나가서도 어영부영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 책임감도 느끼고 한 역사에 점을 찍고 선이 되게 만들려면 버텨야지. 아프고 다치기도 부모님한테도 알리지만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하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 인생을 결정하면 바보지. ‘내가 최선을 다했는가?’ 생각해보고. 어차피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잖아? 나중에 후회 하지 말고. 가정을 만들고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고나서 후회하면 안 되잖아. 미래에 후회하지 않을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식축구에서 배운 ‘희생, 봉사, 개척’ 바탕은 ‘배려’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서로 이해한다’ 하잖아? 이해가 아니라 인정해야하는 것이다. 경기를 못하면 인정하고 옆에서 지켜주고. 미식축구는 잘하는 쿼터백, 러닝백이 있어서 잘 하는 게 아니거든. 가만히 보면 라인맨들이 다하고 있다고. 그래서 라인맨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다. 서로 인정을 해줬으면 좋겠다.
Q10. OB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
정환진 : 창립기념일에 한번 오고 경기 때 오고 자기들끼리만 술 마시고 가버리는 건 아니라고 본다. 자주 오고 필요할 때마다 도와주는 게 관심이잖아? 선배들이 앉아서 박수만 쳐도 관심이잖아? 논다고 돈을 1~200만원 쓰면서 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안 써? 여기서 아름다운 돈을 써야지. 선수시절 서울에 시합 갔을 때, 성대 매니저들이 ‘선배님~’하면서 다 같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봤다. 근데 그때 너무 부러웠다. 우리는 이제 막 생겨난 신생팀이었고 선배들도 2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 그래, 내가 언제 선배가 되면 후배들 시합 보면서 술을 마시겠다.’라고 다짐을 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경기장에서 먹는 술맛이 아주 좋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라고 한다. 옛날 기억도 나면서 경기를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최고령으로 뛰어볼까 생각한다(웃음).
Q11. 월간용광로 한마디
정환진 : 너네 참 대단하다. 우리가 못한 걸 너희가 해낸 것이다. 고생 많고 한편으로는 조금 부끄럽다. 너무 마음이 떨어져 있었으니깐. 이제 자주 올게요. 나 욕 잘해. 목소리도 커서 자주 올 거야. 사랑한다. 늘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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