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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드래곤즈 인터뷰

드래곤즈 26기 조승배 2020.09

by HUEMONEY 2020. 10. 5.

이름 : 조승배
기수 : 드래곤즈 26기
소속 : 드래곤즈OB & 그리폰즈
전공 : 경성대학교 전기공학과

Q1. 조금 옛날로 돌아가서요. 드래곤즈 입부동기가 궁금합니다

미식축구인의 90%는 술로 남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1학년 때 21기 변영훈 형님이 학회장이었는데 처음 OT 하는 날 동아리를 소개해 주겠다고 해서 따라갔다. 첫날 부실에서 막걸리를 먹고 취하고 자다가 일어났는데 교직원 식당 옆에 있는 옛날 장비실에 내가 누워있었다. 난 분명히 술을 먹고 토했는데 자고 일어나니깐 토가 사라져있었다. ‘토가 왜 사라져있지?’라는 생각을 하고 가방을 찾으러 314호 부실로 올라갔는데 매니저 누나가 한 명 있었다. 내가 숙취 때문에 상태가 안 좋았는데 부실에 있던 매니저 누나가 밥을 사줬다. 근데 매니저 누나 술 먹고 다음날 짬뽕을 안사주고 볶음밥을 사줬다. 그런데 그때 알았지. 볶음밥이 숙취에 좋다는 걸(웃음). 그렇게 매니저 누나가 밥을 사준 게 고맙고 미안해서 운동장에 한 번 더 올라갔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벌써 졸업을 하고 있었다. 내가 원래 남중, 남고, 공대였기 때문에 여행 동아리를 찾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지금까지 남아있다(웃음).

 

Q2. 미식축구 동아리에 계속 남아계신 이유?

‘내가 이 운동을 왜 했을까?’라는 생각을 매일하고, 죽을 때까지 생각할 것 같다. 매년 학창시절 저학년, 고학년으로 나뉜다면 저학년 때는 내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라고 생각했다. 나는 천생이 게으른 사람인데 새로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정상적인 게 없고 다 새로웠다(웃음). 좀 희한하다. 내가 운동을 하니깐 사람들이 ‘잘한다, 잘한다’는 말에 으쓱하면서 시작했다. 고학년 때는 재미도 재미지만 ‘사명감’으로 열심히 했다. 그런데 되게 힘들었다. 중·고등학교 때 내가 뛰어나게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대학생활에 미식축구는 ‘내 인생이다’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때 만들어진 인성과 습관이 인생에 좌지우지를 많이 한 것 같다. 그냥 좋았다. 좋은데 이유가 있을까?

 

Q2-2. 새로운 게 많았다고 하셨는데 그중 가장 새로웠던 기억이 있나요?

우리가 접해보지 못한 스포츠를 경험해서 ‘새롭다’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낀 새로움은 ‘와 이런 일을 해도 될까?’하는 새로움이었다. 어떤 형님들은 지나가다가 싸움이 붙으면 나는 ‘이 형들은 고등학교 때 한 가닥씩 했던 형들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 살았던 삶과 색다른 세상이었다. 운동도 하면서 고통이 재미로 바뀌기 시작했고 부실생활도 내가 만약 일반 대학생활을 했었다면 이런 극한의 상황을 겪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자극적인 느낌이 희열로 돌아왔던 것 같다. 제정신이었으면 안했겠지(웃음).

 

Q3.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아무래도 1학년 때 합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체력적으로 정말 끝을 봤던 것 같다. 그때 많은 몸의 변화와 정신이 바뀌어졌다. 1학년 합숙을 제주도에서 했는데 그때 태풍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운동을 하더라고. 요즘 추억 팔이 한다고 옛날에 싸이월드에 들어가보면 내가 다이어리에 ‘와 자연인이다. 15일 동안 아무생각없이 너무 좋았다’라고 적었다. 그때 기절할 정도로 매일매일 운동했는데 15일 동안 비가 한 번도 안 왔다. 장마철 지나가고 비가 오다가도 가버리는 날씨였다. 진짜 마의 주장이라고 불리는 05년도 합숙이었다. 아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극한의 체험을 느꼈을 때 ‘내가 변할 수 있구나, 재밌다’라고 생각했다. 가장 자극적인 합숙이었다.

 

Q4. YB시절 ‘합숙을 가느냐? 가족 유럽여행을 가느냐?’ 라는 두 가지 선택사항 중 합숙을 선택하셨는데 만약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또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그때 유럽여행을 보름정도 가족과 함께 가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럽이라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고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겠지만 그때는 해외여행에서 얻는 희열을 몰랐다. 지금 다시 YB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합숙으로 선택할 것 같다. 아까도 말했듯이 선임이 되면서 사명감, 부담감이 컸다. 또 합숙이 끝나면 바로 추계시합이었기 때문에 한명으로 인해서 적게는 10명 많게는 20명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다. 합숙에서 얻는 즐거움도 컸다.

 

Q5. 다시 가고 싶은 합숙지가 있나요?

YB시절에 제주도랑 진하 밖에 안 가봤다. 나는 ‘다시’보다는 새로운 합숙지를 경험해보고 싶다. 일본이나 필리핀, 또는 더 좋은 하와이로 가보고 싶다.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가서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가는데 하와이 대학교가 있었다. 근데 하와이에는 미식축구가 없는 줄 알았는데 TV에 보니깐 있더라고. 다음에 한번 추진 해보는 게 어떤지……. 호텔 안 잡고 노숙하고(웃음). 하와이 대학교에서 합숙을 하면서 추억도 생기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1석 2조. 

 

Q6. YB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정석대로 운동을 해보고 싶다. 아직 우리나라 풋볼 수준이 일본이나 미국에 비교할 수 없다. 일단 몸관리부터 시작해서 FM대로 배워보고 싶다. 사실 예전에 국가대표를 해보고 싶었는데 ‘국가대표를 하기에는 내 스스로 부족한 게 많다’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때 감독코치님도 잘 가르쳐 주셨는데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지금 또래에 많은 형들이 이야기 하는데 ‘지금 YB 합숙이 재미가 없고 추억이 없고 힘들다’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제주도가서 잠만 잤기 때문에 여기서 자나 저기서 자나 똑같거든. 그래서 나는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항상 승리에 목말라 있는 사람으로서 YB로 돌아간다면 더 FM적으로 운동해보고 싶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게으르다고 말했기 때문에 생각만하고 몸은 안 움직일수도 있다. 내가 이 질문에 답은 했지만 사실 돌아가면 안할 확률이 높다(웃음).

 

Q7. 어떻게 QB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약간 내 자랑인데(웃음). 그 당시 QB가 노평두 형님이었는데 군대에 가시게 됐다. 그래서 리시버를 하면서 주변에서 '평두 형님이 군대 가면 네가 QB를 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래서 첫 무대를 세컨 큐비로 전국대회에 나가서 서울대를 만났다. 그때부터 QB를 하게 되서 졸업 때까지 QB를 했다.

 

Q7-1. 희망포지션이 QB였나요? 따로 해보고 싶은 포지션은 없으셨나요?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1학년 때 오면 “너 이거 괜찮네. 이 포지션 해봐라” 하면 그냥 ‘네’ 하고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강압적인 게 조금 더 컸기 때문에 물론 재미도 있었고 스포트라이트 받는 위치였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도 많았다.

 

Q8. 오펜스에서 QB가 중요한 포지션인데 부상은 없으셨는지?

가벼운 타박상 정도는 있었다. 그 당시엔 내가 내 몸 관리를 잘했었다(웃음). 부상이 곧 문제가 되는 걸 알기 때문에 한 번도 큰 부상이 없었다. 못하는 사람이 다치는 거지. 부상이 몸이 못하는 거보다 마음이 못했을 때 부상으로 바로 온다.

 

Q9. QB랑 주장을 같이했는데 힘들지 않으셨나요?

내가 10년도에 주장을 했는데 와……. 그 여파가 13년도까지 안 없어졌다. 주장할 때 엄청 독하게 많이 했었다. 예를 들자면 시간약속 부분에서는 되게 엄격하게 했는데 한 가지 에피소드는 한 명이라도 늦으면 밥을 다 사게 했다. 일단 돈을 건드렸고 합숙 때는 늦게 내려오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이 올 때까지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박게 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해본 사람으로선 독하다고 생각되지. 그리고 권력을 가지게 되면 겸손해야 하는데 필드 위에서도 내가 대장이니까 멋모르고 까불어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경험이면서도 후회하는 경험이면서도 많은 걸 느꼈던 내 인생에 도움 되는 2010년이었다.

 

Q10. 그 당시 힘들었던 건 어떻게 해소하셨나요?

31기 김현민한테 풀었지(웃음). 엄청나게 풀었지. 나는 그때도 폭력적이었고 괴롭히기도 했으니까 한마디로 히스테리였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거 운동장 20바퀴 도는 게 몸 풀기였고 그게 성에 안차면 언덕 뛰기를 하고 20바퀴를 뛰었다. 이게 엄청 빡센데 나중에는 안 힘들어한다. ‘어? 형님 더 안 뜁니까?’ 하기 시작하더라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31기 안영은이 시합 때 ‘왜 안 힘들까요?’ 라고 하더라. 그만큼 효과도 좋았다.

 

Q11. 26기 계모임을 하면서 YB들에게 지원을 해주시는데 어떻게 결성되었나요?

우리가 졸업하고 동기끼리 ‘계모임 하자’ 라고 말했다. 그래서 돈 모아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고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3개월에 한 번씩, 6개월에 한 번씩 만나다 보니 돈이 쌓였다. 그러다 보니 이제 우리가 남는 돈으로 ‘조금이라도 YB에게 도움을 주고자’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장비로 시작했다가 캐노피, 냉난방기 등 필요한 물품을 지원을 했다. 그 덕분에 미식축구 하면서 처음으로 상을 받았다. 내가 또 상 욕심이 있거든(웃음).

 

Q12. 미식축구 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나는 딱 3명이 생각난다. 첫 번째는 21기 변영훈 형님은 미식축구를 접하게 해준 형님, 두 번째는 22기 박계진 형님, 마지막으로 7기 박창훈 감독님이 있다. 변영훈 형님은 나에게 강인한 멘탈, 정신력을 많이 가르쳐 줬고, 박계진 형님은 진짜 색다른 이상한 경험을 많이 만들어줬고, 박창훈 감독님은 유일하게 ‘은사님’이라고 표현하는 분 중에 한 분인데 운동부터 인성 나의 모든 것을 만들어주셨지. 특히 내 20대 인성을 만들어주신 분이지. 

 

Q13. 미식축구 사회인 팀을 계속하고 계시는 이유는?

이루지 못한 목표가 하나 있었고 내가 좋아했던 미식축구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하는 것도 있다. 한 번이라도 더 터치다운을 하고 싶은 것도 있고 더 멋진 플레이를 하고 싶은 것도 있고 나의 소소한 목표부터 큰 목표까지 이루고 싶다.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미식축구를 함으로써 YB들과 소통에 좀 더 가까워지기도 한다. 서로 피드백도 해줄 수 있으니깐.

 

Q14. 혹시 코치할 생각은 없으신지?

좋은 질문이다. 나는 매일 하고 싶다. 사실 2011~2012년에 졸업하고 5년 동안은 내가 계속 다니는 사람처럼 학교에 왔었다. 하지만 그 후로 이제 현실에 묶여버리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어떻게 보면 핑계다. 나도 YB 때 이런 멘트는 별로 안 좋아했다. 내가 핑계 아닌 핑계를 대는 상황이 오더라고. 그래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 

 

Q16. 신입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사실 나는 신입생 때 기억이 잘 안 난다. 되게 큰 자극밖에 기억이 남는다. 너무 힘들고 너무 재밌고 지금 당장 힘든 걸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힘든 건 당연한 거니까. 이 다음에 생각해보면 후회는 없을 것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으면 하고 싶은 대로 열심히 하길 바란다. 그때 그걸 이기고 버티면 나중에 미래에 내가 돌아봤을 때 후회가 없다.

 

Q17. 미식축구를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미식축구는 내 인생의 절반 이상으로 할애했고 미식축구 인연으로 만난 사랑하는 아내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늘 적극적인 지지와 응원을 해줘서 힘이 나고 열심히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Q18. 오늘 인터뷰 어떠셨나요?

인터뷰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글이 많이 길었으면 좋겠다(웃음). 최소 2장  정도. 콘셉트를 잘 잡아줘라. 사실 오기 전엔 되게 겸손하게 인터뷰 하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오기 전에 준비한 멘트가 ‘나 말고도 참 멋진 형님들이 많은데……. 경성대를 이끈 엄청난 멋진 사람이 많아, 난 거기서 빙산의 일각도 안 되는......’ 그런 멘트를 준비했었는데 갑자기 예능으로 빠지면서 자기자랑 토크로 바뀐 거 같다.

 

Q19. 월간 용광로에 한마디

나는 사실 월간용광로가 전국으로 갈 줄 몰랐다. 말왕도 인터뷰하고 미국에 있는 코치도 인터뷰했더라. 그런 일도 해내는 걸 보면 충분히 추진력 있고 아이디어가 좋다. 그래서 ‘월간 용광로’라는 콘텐츠를 계속 했으면 좋겠다. 기록이 꼭 있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모아줬으면 좋겠다. 사실 풋볼에서 이런 건전한 문화가 나오기 쉽지 않은데(웃음). 좋은 거 같다. 경성대 미식축구부가 남다르다는 생각을 많은 학교가 할 거 같다. 필드 위에서의 성적만이 아닌 ‘단합력이 좋다’라는 생각을 할 것 같다. 타 대학에도 좋은 영향력을 주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