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드래곤즈 인터뷰

드래곤즈 32기 차홍빈 2021.03

by HUEMONEY 2021. 4. 9.

이름 : 차홍빈
기수 : 드래곤즈 32기
소속 : 드래곤즈OB
전공 : 경성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 RMIT University 산업디자인전공

 

Q1. 드래곤즈 입부동기가 궁금합니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재건이가 같이 미식축구를 하자고 했다. 처음 들어왔는데 뭔가 교내 캠퍼스 안에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생겨서 좋았다. 그래서 인테리어를 조금 바꿔보자는 취지에서 부실 안에 페인트칠을 했었다. 그때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어요. 공간 리모델링 소파, 페인트 칠 등 외관적으로 신경 쓴 이유는 전공이 산업디자인이다 보니 관심이 그런 쪽으로 쏠렸던 것 같다.

 

Q2. 32기 동기들끼리 있으면 자주 싸우는데 이유가 있나요?
살아 온 가치관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싸울 이유는 없다. 모든 주제로 싸운다.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은 말이 가장 많은 사람이겠죠? 이재건이 제일 말이 많구요. 가장 넘사벽이구요. 그 다음이 애매한데, 최명훈인 것 같아요. 한 번 방언 터지면 장난이 아닙니다. 제일 말이 없는 사람은 장원열인 것 같아요. 

 

Q3. 경성대 재학 도중 돌연 호주로 유학을 가셨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군대가 면제였기 때문에 ‘뭐할까’하다가 2년만 호주에 있으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있다가 온 것 같다. 짧은 과정을 꿈꾸고 같으나 한국보다 호주가 너무 좋았다. 제 성격상 평화로운 삶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종교, 사람들의 성격, 생각, 문화, 관습 이런 게 따뜻하고 친구같아서 좋았다. 국적도 바꿀 생각까지 했었다.

 

Q4. 호주를 다녀오고 난 뒤 바라본 드래곤즈 OB로써의 느낌은?
마치 내가 3살 애기를 놔두고 돌아왔는데 성인이 되어 훌쩍 커버린 아들은 본 느낌? 많이 달라졌다. 아주 잘 자라준 느낌이다. 일단 사람 수가 많아졌다. 그리고 수직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서 수평적으로 바뀐 것 같다. 가식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YB 애들이 진심으로 대해주는 느낌이었다. 저도 항상 바래왔던 점이이었다.

 

Q5. 미식축구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울산대 경기 전날, 영화 300을 보고 갔다. 거기서 군인들이 다 같이 뛰어가는 장면을 좋아해서 그걸 생각하고 킥오프를 했는데 울산대 선수 한 명이 저한테 부딪히고 구급차에 실려 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아 내가 하면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에게는 미안하다. 


Q6. ‘미사일’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이유는?
1학년인가 2학년 합숙 때, 진하해수욕장에서 OB형님들이 운동하면서 다그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객기를 부렸었다. 그날 운동을 마치고 게임을 하는 날이었다. 그때 OB분들 앞에서 스스로 나를 ‘미사일’이라고 소개를 했었다. 


Q7. YB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걸 하고 싶나요?
주식과 비트코인을 사고 싶다(웃음). 좀 더 NFL 경기를 계속 보면서 요즘 축구선수들 이름 외우듯이 NFL 선수들 이름을 외워서 덕질을 해보고 싶다. 덕질을 하면 경기를 할 때, 이해도가 높아지고 지식도 많이 쌓여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미식축구를 더 잘하고 싶어서.


Q8. 호주에서 인연을 만나 국제결혼까지 하셨는데 결혼생활은 만족하시나요?
식습관 차이는 있지만 외계인과 결혼하지 않는 이상 사람은 다 똑같은 것 같다. 갈등이나 여러 가지 일들은 다 비슷한 것 같다. 


Q9. 향후 한국에 계속 계시나요?
일단 호주로 다시 돌아가긴 할 것이다. 근데 지금 언제 돌아갈지 정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디자인 사업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시각, 제품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 아니면 아이디어 상품. 


Q10. 귀여운 2세 탄생 축하드립니다.
현재 이름은 미정이다. 원래 아기 얼굴을 보고 지으려고 했는데 너무 귀여우니깐 뭘 붙여도 안 어울리는 것 같다. 아직 아기라고 부른다. 일단 영어이름은 ‘올리바아 차’라고 지었다. 처음 임신을 했을 때 ‘돌이킬 수 없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자라서 학교도 보내고 케어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시작됐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공격적으로 사회에 스타트를 끊었다고 생각하니깐 좀 막막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깐 천천히 준비를 하면 될 것 같다.

 

Q11. 힘들었을 아내에게 한 마디
힘을 잘 못 쓰는 체질이고 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출산 당시 ‘큰일이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옆에서 힘이 돼 주는 말을 해줬는데 생각보다 잘 해줘서 다행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칭찬할 정도였다. 정말 고맙고 저와 아기를 위해서 초인적으로 힘을 낸 게 감동적이었다.

 

Q12. OB나 YB들에게 하고 싶은 말
조금 더 잦은 왕래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중간에 공백이 많았는걸 미안하게 생각한다. 한국에 없었을 동안 이제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지원 과정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결국에는 정상적으로 팀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느낍니다. 지금 YB들은 내가 YB였던 시절보다 더 성숙한 것 같다. 이 코로나 상황에서 뭉치기도 힘든데 잘 뭉쳐져 있다는 게 대단하다. 편하게 대해줘서 고맙다. 빨리 운동을 같이 하고 싶다.

 

Q13. 한국이랑 호주에서 학교생활을 해봤는데 학생들 태도가 어떻게 다르나요?
학업에 있어서는 호주에서는 자발적이고 자유적이다. 예를 들면 수업을 들을 때 앞에서 선생님이 문제를 던져주거나 발표할 자원을 구하면 앞 다투어 하고 싶어한다. 되게 자유롭다. 교실에 앉아있다가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 되고 먹고싶으면 먹어도 된다(웃음). 틀이 없는데 되게 잘한다.

 

Q14. 드래곤즈의 바라는 점이 있나요?
네, 드래곤즈라는 너무 큰 산성에 저처럼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던 OB들도 편하게 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약간 회비내면 OB인 것? 살다가 순간 ‘아 드래곤즈 했었지, 한 번 가볼까?’하고 편하게 올 수 있는 단체였으면 좋겠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


Q15. 월간용광로에 대한 한 마디
사실 월간용광로는 오래 못갈 줄 알았는데 굉장히 꾸준히 나오는 것엔 놀랍다. 저처럼 모른척하면서 꾸준히 챙겨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분들을 위해 좀 더 힘 써주시고 많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