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박성원
기수 : 드래곤즈 33기
소속 : 드래곤즈 OB
전공 : 경성대학교 건축학과
Q1. 드래곤즈 입부동기가 궁금합니다.
입부계기는 따로 없고 끌려왔다. 그때 끌려왔을 때, 미식축구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 때 지금은 나가신 분이시지만 26기
길성문 형님께 끌려왔었다. 그분이 손짓해서 갔는데 주변에 있던 다른 분들이 제 사지를 잡아서 데리고 갔다. 저희 과 15
명 함께 걸어가고 있었는데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저만 지목당했다. 그때 같이 가던 친구들은 ‘우리 먼저 노래방 가있을께~’하고 가더라구요. 끌려옴과 동시에 신상명세서를 적었는데 알고봤더니 고등학교 선배인 31기 김현민 형님이 계셨다. 그 이후로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계속 남아있게 된 것 같다. 윗 기수였던 31기,32기 형님들도 좋았고 그 위에 계시던 분들도 좋았다.
Q2. 미식축구 하면서 힘든 점이 있었나요?
제일 힘들었던 시간은 미식축구 아무것도 몰랐던 1학년 여름합숙이었다. 진짜 거짓말 안하고. 재밌긴 재밌었는데 저희때 사건사고 많았다. 그때 14일을 집 밖에서 지내야 된다는 게 처음이었다. 갔는데 운동도 힘들고 술도 너무 힘들었다. 지금이랑 다르게 많이 먹었었다. 밤 되면 동기였던 김성길이라는 친구랑 밤바다 보면서 ‘성길아 너무 힘들다’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때 합숙 2주 중에 1주차 주말에 단체로 지갑이랑 공금을 도둑맞았다. 한 200만원 정도 됐다. 그래서 ‘아 이거 어떻게 하나, 이대로 집에 가겠구나. 했는데 주말에 OB형님들이 합숙 오셔서 밥, 술먹을 돈을 지원해주시고 가셨다. 그래도 성훈형님, 경민형님, 정민형님이 기억이 남는다.
Q3. 가장 기억에 남는 시합은?
어떤 학교랑 시합한 건 기억이 안 나지만 1학년 시합, 고참 때 시합이 따로 기억에 남는다. 1학년 때, 실수를 엄청 많이 했다. 처음부터 센터라는 포지션을 들어가서 정 가운데 있는데 압박감도 심했다. 다른 학교들은 언더스냅을 하는데 우리 학교는 합숙을 하고 난 뒤, 샷건으로 바뀌었다. 그때 샷건으로 공을 공중으로 날려서 큐비를 훌쩍 넘겼었다. 작전이고 뭐고 개판쳤다. 고참되서 나서는 전국대회를 나가서 한양대와 붙었던 시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시절 현실적으로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부학회장도 하고, 주말 알바도 하고, 미식축구도 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다. 시합 전 날, 알바를 하고 새벽에 출발해야했기 때문에 컨디션이 안좋았다. 그 상태로 15인승 미니버스를 타고 올라갔는데 대부분 덩치가 크니깐 버스가 너무 작았다. 올라가면서 버스에서 피로가 풀릴거라고 생각했지만 더 쌓였다. 그 상태로 한양대와 시합을 했는데 전반에는 우리가 많이 밀렸다. 대부분 컨디션이 많이 안좋았기 때문에. 그러다 저희가 분위기를 타고 이길 수 있는 상황이 됐지만 하나의 실수가 나와서 한양대에게 큐비런을 크게 주고 시합이 끝났다. 그때 내 위, 아래 기수들이 모두 잘했는데 부산에서 경기도까지 가면서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너무 아쉬운 경기였다.
Q4. 시합 끝날 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는 이유는?
나는 원래 눈물이 많다. 다른 분들이 생각하시기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저는 운동할 때마다 최선을 다했다. 솔직히 경기 이기려고 운동하는데 지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진짜 억울하고 분해서 울었던 것 같다. 조금만 더 했으면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우는 거죠. 그런데 웃긴 게 제가 질 때마다 우니깐 ‘아 이게 아닌가?’싶기도 해서 나중에는 몰래 구석가서 울면 준식이 형님이 오셔서 많이 달래주셨다. 이겨서 좋아서 운 적도 많고 지고 분해서 운적도 많다.
Q5. 알바, 학과 부학회장, 미식축구 생활도 하면서
‘핵인싸’였는데 힘든 점과 동생들이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 실 수 있나요? 모든 활동을 하면서 그 당시에 재밌었고 힘들었다. 활동 할 때는 재밌는데 나의 휴식시간이 없으니깐 힘들었다. 솔직히 학교를 다니면서 내 휴식시간은 강의시간이었다. 강의 가서 잤다. 일주일 내내 꽉 차있었다. 그래도 힘든 만큼 재미있었다. 요새 동아리 내에서 학회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많더라. 작년이나 재작년에 그걸 고려하는 동생들이 많았다. 솔직히 말하면 학회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동의한다. 하지만 학회장, 부학회장은 말리고 싶다. 차라리 하더라도 집행부 정도 하면 좋을 것 같다.
Q6. 코치를 하면서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은?
코치와 선수를 병행하면서 운동을 했었다. 그때 32기 형들도 같은 시기에 코치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YB가 모자라서 선수생활도 했었다. 운동, 시합이 재밌었지만 한 번씩 ‘내가 선수인가? 코치인가?’ 의구심이 든 적이 많았다. 근데 코치를 하면서 힘든적은 없었다. 하지만 둘 다 할 수 있어서 재밌었다. 이건 사실 비밀인데 좋았던 건 선수하다가 체력적으로 힘들면 코치를 하면 되기 때문에 덜 힘들었다. 그리고 시합도 나갈 수 있으니깐 재밌었다.
Q7. YB시절과 OB시절의 다른 점은?
다른 게 너무 많다. 가장 크게 와닿는건 학교라는 매개체가 있다 보니깐 YB시절에는 다 같이 행동할 수 있는 계기가 많은데 OB가 되니깐 각자 일을 하기 때문에 개인이 되어버리니깐 다 같이 행동할 수 있는 계기가 적어진 것 같다. 그나마 동기 한명이라도 있어서 자주 오는 것 같다.
Q8. OB회 활동을 지금 안 하고 계시는데 나중에는 어떻게 하실 예정이신지?
당연히 하고 싶다. 하지만 제 능력이 지금 안 되니까 못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능력이 뭐가 필요하냐고 말씀하시는 분
들도 있겠지만 OB가 됐으면 어느 정도 지원(밥이라도 한 끼 사주거나 등)을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하기 어려운 것 같아서 안 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OB회 활동을 꼭 하고 싶다.
Q9. 졸업하고 드래곤즈의 이런 부분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졸업하기 전에는 단합이 좋았는데 지금 현 상황에서는 옛날보다 단합이나 친밀감이 줄지 않았나, 그래서 더 학년별로 노는 거 같은데 솔직히 어떻게 보면 꼰대 마인드라고 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여러 기수가 다 같이 놀았는데 지금은 약간 따로따로 노는 거 같은 기분이 있지 않나 싶다. 이렇게 된 이유가 코로나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제가 YB시절에는 저를 챙겨주는 사람도 많았고 제가 챙기는 애들도 많아서 어떻게든 단합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고참이 밑에 기수를 많이 챙겨주는 것 같지도 않고 밑에 애들도 그걸 바라지 않아서 따로따로 놀지 않나 싶다.
Q10. YB&OB에게 전하고 싶은 말
YB에게는 졸업하고 느끼는 건데 취직을 하고 사회에 나와 보면 학교 다닐 때가 그렇게 그립고 생각나는데 YB들은 지금이 제일 좋을 때다. 학교 다닐 때 너무 걱정 같은 거 없이 좀 더 즐기면서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OB형님에게는 다 같이 미식축구 한 번 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블루곤즈처럼 다 같이 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Q11. 월간용광로에 한마디
용광로를 가거나 경성로나 부실을 가게 되면 월간용광로를 보게 되는데 OB들끼리도 매번 직접 다 연락해서 소식을 알 수는 없는데 월간용광로를 통해서 소식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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