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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드래곤즈 인터뷰

드래곤즈 32기 이재건 2021.06

by HUEMONEY 2021. 7. 24.

이름 : 이재건
기수 : 드래곤즈 32기
소속 : 드래곤즈 OB
전공 : 경성대학교 행정학과 

 

Q1. 드래곤즈 입부동기가 궁금합니다.

예전부터 상목이랑 오래된 친구다. 3월 초, 중앙도서관 앞에서 드래곤즈 신입생 홍보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아이실드21’ 만화책을 본 지 얼마 안 되서 호기심이 있었다. 처음에 성훈형님과 눈 마주쳐서 도망갔는데 성훈형님이 고운이누나 시켜서 데리고 오라고 해서 잡혔었다. 드래곤즈 부스에 설명 한 번 듣고 입부지원서 썼다. 다음날 새내기 문화제 하는데 옆에서 운동을 하고 있길래 상목이랑 구경하고 있다가 성훈형님이 ‘너 어제 걔네?’라고 알아보셔서 운동 끝나고 추억의 ‘와아장터’에 가서 술 먹고 계속 남게 되었다. 나랑 상목이가 먼저 들어왔는데, 나중에 홍빈이도 꼬셔서 데리고 왔다. 동기 중에서도 초창기 멤버다. 

 

Q2. 입부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내가 처음 들어갔을 때는 고참들이 많았다. 그때 부실 분위기가 정말 괜찮았다. 카드놀이 하면서 형들이랑 시간 많이 보냈고 사람도 많아서 운동장 올라가서 운동하는 것도 재밌었다. 그때 형들이 음식남녀, 천탁, 와와장터에서 술도 자주 사줬다. 1학년 때는 과 생활 아예 버리고 동아리생활에 올인 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1학년이 대학교 적응하기에는 과보다 동아리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데 거리낌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있었다.

 

Q3. 동기들이 많이 남았다. 그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최근 근 기수 중에서는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현재 32기 6명이다. 일단 많이 남은 이유는 우리끼리 많이 친했다. 상목이, 홍빈이는 그 전부터 알던 친구들이었다. 애들이 착해서 제가 뭐라고 해도 다 잘 들어주고(웃음). 일단 기본적으로 YB때는 운동이 재밌어서 남은 것 같다. 가장 근본적이 이유다. 처음에 상목이랑 홍빈이랑 미식축구를 접하고 따로 공을 사서 벡스코 앞에 가서 세 명에서 던지고 놀았다. 공강 시간에도 병도랑 많이 던지고 놀았다. 그만큼 재밌었다. 고학년이 되고나서는 책임감이 커졌던 것 같다. 나는 군대제대하고 울산대 합숙부터 스스로 많이 바뀌었다. 운동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합숙을 다녀오고 나서 스스로 성장한 걸 느낄 수 있었다. 해양대랑 춘계, 추계 다 붙었었다. 춘계는 졌지만 추계 때 엄청 크게 이겼었다. 시합 끝나고 당시 해양대 감독이 ‘너네 진짜 많이 성장했네.’ 이 말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고학년이 되면서 책임감을 느끼고 운동하면서 졸업까지 한 것 같다.

1학년 때 신구대면식 끝나고 ‘저의 목표는 OB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다른 형님들도 이런 말 처음 들어본다고 그랬다.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박창훈 단장님이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만 지금까지도 열심히 하시고 관계를 유지하고 계시는 게 너무 멋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동생들에게도 스스럼없이 ‘형님’이라고 말하는 게 20살 나에게는 정말 멋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신입생이 들어오면 ‘들어왔다가 나가면 몇 명 안 남는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남아야겠다’라고 생각해서 ‘OB가 되는 것’이라고 표현을 한 것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형님들이 그 이야기를 기억해주시더라. 결국은 스스로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Q4. 본인 기수나 형, 동생 중에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라이벌이 있었나요?

신입생 때, 군대 제대 후, 고참 때 모두 다르다. 신입생 때는 지금은 나갔지만 동기 병도한테 라이벌 의식을 느꼈다. 같은 RB이었고 서로 능력치가 달랐지만 비교도 많이 당했었다. 병도가 태클도 잘하고 겁 없이 운동하고 그랬다. 제대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라이벌이었다. 군대 다녀오고 나서 다 까먹었기 때문에(웃음). 고참 때는 상목이랑 성우한테 라이벌 의식을 느꼈다. 상목이는 묵묵하게 운동하는 게 멋있다고 느꼈고 성우는 체구는 작지만 시합 때 정말 멋있다. 다른 역할이지만 ‘이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겁 없고 태클이 세다. 

 

Q5. 코치를 했던 경험이 있다. 미래 코치가 될 성우에게 조언 한마디.

조언을 주기엔 많이 성장했다. 지금 성우가 하는 거 보니깐 잘하는 것 같다. 저도 코치를 1년 안되게 했었다. 하면서도 동기 상목이랑 원석이도 같이 코치를 했지만 ‘코치자리보다 선수자리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코치를 맡았기 때문에 ‘스스로 코치로써 가치를 올려야겠다’라는 생각도 해서 초이볼도 지원했었지만 ‘선수로써 뛰고 싶다’라는 마음이 더 컸다. 코치 그만둔 지 몇 년 지나서 조언을 하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났다. 나이 많은 것 밖에 없다(웃음). 한 가지 꼭 조언해야 된다면 ‘선수별로 가르쳐주는 게 달라서 잘 캐치해야한다’. 그런 부분만 주의 깊게 봐주면 좋겠다. 또 운동 커리큘럼도 다양하게 추가하면 좋을 것 같다. 그것만 파악하면 성우는 잘하니깐.

 

Q6. 본인 인생에서 미식축구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YB를 7년 정도 했다. 졸업하고 한 발 물러나 있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얻은 게 있다면 잃은 것도 있다. 멀리하면 생각이 많이 나는데 가까이 하기엔 큰 그런 느낌? YB때는 운동하고 주말에 시합하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때 당시에 동아리를 나간다고 하는 사람들도 이해 못했었다. 이건 변명이고 핑계이지만 미식축구 외 다른 사회 활동을 너무 안한 것 같다. YB시절에 운동을 엄청 열정적으로 했다고는 말 못하지만 최대한 많이 참석을 했다. 우선순위가 운동이었다. 100%로는 아니지만 95% 정도?(웃음) 4학년 때는 부모님 속여가면서 운동을 했으니깐. 하여튼 계륵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쓰이는 게 이상하지만 긍정적인 의미의 계륵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계륵이라는 단어보다 그 뜻,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Q7. ‘미식축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동기들이 생각난다. 특히 원열이는 졸업하고도 매일매일 연락을 한다. 대학생 때, 놀리기도 많이 하고 장난도 많이 쳤는데 지금 와서 보니깐 서로에게 도움이 많이 되는 친구가 되었다. 대학생 때 못해준 게 미안할 정도이다. 동기들이 있으니깐 미식축구를 했고 제가 운동을 하니깐 동기들도 있었다. 이거 아닐까요? 동기들이 많은 게 장점이다. 전체 기수를 따져도 동기가 많은 편에 속한다. 

 

Q8. 가장 좋았던 기억과 나빴던 기억을 하나씩만 말해준다면?

나빴던 기억은 ‘체력운동’이다. 체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체력운동 하는 날이라고 하면 심적으로 하루 종일 힘들었다. 표정을 못 숨기니깐 체력운동 때문에 상목이랑 다툰 적도 있다. 체력이 뒷받침이 안 되는데 체력이 안 되니깐 ‘안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철없는 생각을 했었다. 당연히 시합을 하려면 체력이 돼야하는데 당장 눈앞에 체력운동을 해야 한다는 게 싫었다. 

 

좋았던 기억은 동기들도 있지만 형, 동생들을 알게 된 것. 가끔씩 오랜만에 만나도 스스럼없이 이야기 하는 것. 내가 운동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만으로 오래가는 사람들을 얻은 거니깐. 이게 진짜 평소에도 많이 생각한 거고 이걸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Q9. 다시 YB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할 것 같은가?

원열이가 탈부하려고 했던 걸 막고 싶다. 그때 잡았다면 전국대회를 나가지 않았을까. 그때 원열이가 나가려고 할 때 길게 카톡이 왔었는데 내가 ‘ㅇㅇ’이라고 보냈었다. 그 이후 연락을 잘 안했었다. 그리고 마지막 동서대 시합 할 때, 명훈이가 터치다운을 찍었는데 반칙이 떴었다. 그래서 결국 터치다운이 취소됐었다. 그때 반칙을 막고 싶다. 

 

Q10. 제일 기억에 남는 시합은?

2016년 추계시즌 자체가 재밌었다. 전반에 부산대 이기고 있었는데 후반에 체력이 딸려서 결국 지고. 내가 QB로 원 패스 던져서 성공한 것. 동서대도 거의 이길 뻔했고. 추계 전패였지만 마음만은 이기고 있었다(웃음).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시합은 마지막 전국대회 한양대전이다. 솔직히 전국대회 자체를 처음 가봤기 때문에. 처음에는 지다가 중반쯤 따라잡다가 마지막에 인터셉트 당해서 한골 먹히고 절망적이었다. 계속 RB로 뛰다가 마지막에 감독님이 ‘니 하고 싶은 거 해봐라’해서 QB로 다시 뛰어보겠다고 했다. QB로 바꾸고 그 날 최고 야드를 뛰었다. 그런데 뛰면서 태클당해서 넘어지는 순간 엄청 울었다. 시합이 끝났다는 것 보다 ‘마지막 YB 시합이 허무하게 끝났다’라는 생각에 울었던 것 같다. 그때 기억이 제일 많이 남는다. 

 

Q11.경찰 생활을 하고 있다. 어떤가? 

저 같은 경우는 원래 경찰을 준비할 생각이었고 입학할 때부터 전과를 생각하고 있었다. 경찰 근무 만족도는 대체로 높다. 사람들이 대부분 공부를 1년 넘게 거치고 들어온 사람들이니깐. 대신 일하는 거에 비해서 돈이 적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그래도 시간적으로 여유롭다. 일할 때도 그렇고 사적으로도 정상적인 멘탈을 항상 유지하고 있다. 경찰로서 사명감이 있기 때문에. 대신 야간근무를 하니깐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진상 민원인이나 술 먹은 사람들 상대하는 게 정신적으로 짜증날 때 많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만족도는 높다. 지구대 업무, 서무업무, 수사업무, 보안업무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 할 수 있어서 좋다. 요즘 공무원이나 경찰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니깐 한번쯤은 도전해볼 만한 것 같다. 일하거나 운동을 하면 조직문화에서 사람이 중요하잖아요. 저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팀 동료에 대해서는 운이 좋은 것 같다. 

 

Q12. 경찰 생활에 드래곤즈 경험이 도움이 된 것 같은가?

경찰생활을 하면서 드래곤즈 생활도 도움이 됐다. 남자 삶에 있어서 계급사회를 겪어볼 수밖에 없다. 군대를 가든 운동을 하든 일을 하든. 내가 밑에 있을 때는 어떤 부분을 해야 되는지 조금 더 빨리 파악할 수 있었고 눈치 있게 빨리 행동을 했다. 그리고 경찰 준비하면서 필기 끝내고 체력준비를 따로 하지 않았다. 드래곤즈 하면서 쌓아왔던 게 있었기 때문에 시험을 쳐서 고득점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체력적인 부분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조직문화를 경험해봤다는 자체에서 기존 조직에서 더 큰 조직으로 나가서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적응하는데 도움이 됐다. 

 

Q13. YB들에게 그리고 OB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YB가 보기에는 열심히 안 했을 수도 있지만 나름 7년 동안 열심히 했다. 지금은 YB들은 20대 초반이니깐 운동에 올인 해봐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생에 한번쯤은 올인 해보는 경험도 좋으니깐. 뭔가 하나에 미쳐보고 미래를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뭐가 하고 싶다’라는 직업적인 목표를 빨리 잡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나는 입학할 때부터 정하고 들어와서 미식축구 하면서도 차근차근 준비했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면 열심히 해야 한다.

OB중에서도 막내이기 때문에(웃음). 한 번씩 모이는 자리에 조금 더 서로에 대해서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제가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시고. 오랜만에 갔는데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어디 가야할지 모르겠고... 서로 알아갔으면 좋겠다.

 

Q14. 마지막으로 월간용광로에 대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돈 내고 후원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밴드에 올라오는 건 보고 있었다. 되게 재밌고 저도 약간 보수적인 성격이 있어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건 꺼려하는 편이다. 제가 YB 때는 없었으니깐. 예전에 상목이나 홍빈이가 변화를 시도하려면 저는 동참을 안 해줬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거라도 시도해보고 응원해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학교 인터뷰도 좋고 취지도 좋다. 월간용광로에 힘을 못 실어주는 데 미안함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