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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석진우 컬럼

석진우 컬럼 _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거늘!!! 스포츠계 민낯...폭력

by HUEMONEY 2020. 10. 5.

스포츠관련 뉴스가 스포츠란에 있지 않고 사회면이나 1면을 장식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대단히 심각한 사건이라는 뜻이다. 철인3종경기 故 최숙현 선수의 사망소식과 관련 뉴스가 1면에 연일 나오고 있다. 후속보도로 감독은 고등학생 선수에겐 술을 강요하고 팀닥터는 자격증도 없으면서 치료를 핑계로 성추행까지 일삼았다고 한다. 정말로 화가 나고 욕이 나온다.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가 심석희 선수를 폭행 및 성폭행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던 것이 불과 작년 아니었나? 뉴스에 최숙현 선수의 폭행관련 음성만 나오는데도 듣기가 너무 힘들다. 몇 년전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5살도 안된 아이를 따귀를 때려 아이의 온 몸이 날아가는 동영상을 뉴스에서 방영하여 전 국민이 멘붕이었던 적이 있다. 이래서 요즘은 뉴스를 잘 안본다. 

첫째 아이가 7살 정도 무렵 야구를 워낙 좋아하여 집근처 야구팀을 찾아간 적이 있다. 마침 다른 팀과 연습 경기중이었고 나와 첫째는 관중석에서 즐겁게 구경하고 있었다. 경기가 끝나면 감독과 이야기해서 입단시키려고 기다렸다. 그런데 경기중 초등학교 4~5학년 쯤 보이는 한 선수가 상대 투수의 공을 못치고 계속 헛스윙을 했다. 감독이 갑자기 욕과 함께 그 선수를 부르더니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내려쳤다. 아이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운동장 바닥에 널부러졌다. 나는 경악했다. 순간 아들 눈과 귀를 가리고 싶었다. 그런데 관중석에서 선수들 부모님인 듯한 몇몇 어른들의 말에 나는 미래 야구스타 부모의 길을 완전히 포기했다.

“ 저 정도도 못 견디면 중학교 올라가서 운동 못 따라가..”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폭력에 길들여져 있는가? 얼마 전 경기도에선 부모들의 폭력을 피해 위험한 아파트 담벼락을 타고 물탱크에 5시간 이상 숨었다가 편의점에서 발견되어 구조된 9살 여자아이의 사연을 뉴스에서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일상생활에서의 폭력은 뉴스검색을 하면 넘치고 넘친다. 너무 일상적인 현상이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 폭력이 그저 일상의 일부분으로 아예 자리를 잡은 건 아닌가? 

심지어 프로선수들도 선배 선수들에게 맞았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면 이건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LG 트윈스의 모 선수는 이별을 통보한 여자 친구를 폭행했다. 메이저 리그에서도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선수들이 있는데 이런 전력이 있으면 팬들로부터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아예 선수 소개할 때마다 ‘가정폭력 전과가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이름 앞에 붙어 다닌다. 2019년을 시작했던 KBO는 년초를 폭력사건들로 거창하게 시작했다. NC의 2군코치는 경찰관의 얼굴을 손으로 때려 폭력 협의를 받았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대학생 운동선수 인권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33%에 달하는 선수들이 신체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성폭력도 9.6%나 된다. 이게 우리가 사는 지금의 대한민국 맞나?

우리나라 미식축구라고 예외는 아니다. 필자가 선수시절이던 80년대에는 연습내용이 시원찮으면 선배나 주장이 나와서 소위 ‘빠따’를 일상적으로 휘둘렀다. 입부는 자유지만 나갈 때는 빠따를 맞아야 했다. 시합에 이기고 있어도 펌블이나 실수를 했다면 하프 타임때 또 정신차리라고 빠따 빠따 그리고 빠따.. 필자는 고려대 감독을 하면서 그만둔 몇몇 선수들을 어렵게 연락해서 운동을 포기한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이유를 알아야 팀을 더 좋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운동이 힘들어서 그만둔 이유보다 운동외적인 이유가 더 많았다. 2020년에도 폭력이 난무하는 팀이 있나? 있다면 팀은 해체하고 선수들은 당장 때려 쳐라.

최근 2년간 운동장에서 공식경기 방송해설을 하면서 현장분위기를 계속 경험하고 있다. 여전히 사이드라인에서는 욕설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이런 욕설이 코칭스탭의 열정이 과하다는 말로 예쁘게 포장되기도 한다. 일부 관중들은 삐뚤어진 애교심에 상대팀을 상대로 언어폭력을 행사한다. 부상당한 상대팀 주전선수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폭력이다. 

스포츠계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첫 번째는 폭력이 결코 결과를 좋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모든 지도자들이 진심으로 인정해야 한다. 아직도 폭력이 나쁘긴 하지만 단기간 선수들을 집중하게 하고 성과를 내는데 효과가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스포츠 지도자와 선수들이 많다. 백보 양보해서 결과가 그랬다고 하자. 하지만 폭력과 강압을 통해 그 한 경기, 한 세트, 한 이닝만 이기면 되는가? 폭력에 노출된 선수들이 가지는 자괴감, 마음의 상처, 결국 자신의 꿈까지 포기하고 삶까지 포기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되는 것인가? 폭력으로 이룬 우승 트로피가 과연 가치가 있는가?

둘째는 폭력을 사용하는 지도자에 대한 평가기준은 가혹해야 한다. 폭력은 형편없는 지도자의 자질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한때 시합의 결과만을 가지고 지도자를 평가했던 시절이 있었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토에서는 가장 편하고 고민할 거 없는 지도방법이 바로 폭력의 사용이다. 한때 추앙받던 박종환 축구의 폭력적인 스파르타식 훈련방식은 2002년 히딩크가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국가대표를 이끌면서 사망선고를 받았다. 전략, 전술, 체력프로그램, 동기부여등 지도자가 갖춰야 할 다양한 자질과 지식이 있으며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동기를 부여하려면 지도자로서는 정말 많은 고민을 요구한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때로는 마음을 움직이는 연설로 선수들을 독려하고 격려하는 코치는 주먹을 휘두르는 코치보다 몇 백배 힘이 든다. 방독면을 씌우고 운동장 수십바퀴를 돌리는 것은 초시계를 들고 일정 구간을 계속 반복해서 왕복달리기를 하면서 진행하는 체력훈련보다 간단하고 무식하고 지루하고 비효율적이다.  

셋째는 폭력은 다시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것이다. 흔히들 맞아본 놈이 때린다고 한다. 심리학적으로도 많은 증거가 있다. 어려서 가정폭력을 당하는 일부 아이들은 커서 맞폭력을 행사한다. 힘이 부모들보다 세어지니 같이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이다. 감독에게 맞은 선배들은 새로 들어오는 후배들에게 다시 폭력을 대물림한다. 맞은 후배들은 다시 새로 들어오는 신참에게 또 폭력을 휘두른다. 

이러한 폭력현상에 유력한 용의자로 등장하는 것이 가정, 학교, 군대 그리고 직장이다. 그렇다. 가정에서 폭력을 배우고, 학교에서 폭력에 둔감해지고, 군대는 폭력성이 증폭되고 직장은 폭력이 일상화된다. 그런데 이 용의선상에서 언급되지 않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결국 이 폭력을 바로 잡을 사람은 우리 자신들 뿐이다.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가장 용의자 같지 않던 그러나 모든 비밀과 열쇠를 가지고 있던 극악무도했던 전설적인 악인 카이저 소제가  다리를 절던 피해자처럼 보였던 보잘 것 없었던 용의자.. (아이러니 하게도 그 캐릭터를 연기했던 케빈 스페이시는 최근 성폭행 협의로 경찰조사를 받고 활동을 접은 상태다..) 

그 누구도 폭력엔 승자가 있을 수 없으며 이는 명백한 범죄이다. 폭력의 유일한 승자는 폭력 그 자체이다. 배우 김혜자씨의 예전 책제목은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故)최숙현 선수가 마지막으로 기댄 민중의 지팡이 경찰이 최선수에게 했다는 말은 우리를 너무나도 절망케 한다.

 ‘운동선수라면 그럴 수 있는 일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