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컬럼/석진우 컬럼

석진우 컬럼 _ 심판, 그 얄궂은 운명에 대한 변명..

by HUEMONEY 2020. 10. 5.

  디즈니 영화에서는 빠질 수 없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멋진 주인공이 있고, 반드시 악당과 주인공을 도와주는 응원군이 있어야 한다. 악당도 비서 역할을 하는 약간은 멍청한 조연 악당이 있고 응원군에는 반드시 경쾌한 웃음을 주는 캐릭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캐릭터 구성은 끝났다. 이야기(plot)을 잘 만들면 된다. 모든 스포츠 경기에서는 디즈니 영화처럼 반드시 있어야 할 구성요소가 있다. 시합을 하는 각 팀들 그리고 팀에 속한 선수들과 스탭. 멋진 운동장과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협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기를 공정하게 판정하는 심판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 오늘은 항상 뜨거운 감자인 심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그것도 심판의 입장에서 말이다. 선수의 입장에서 심판에 대해 글을 쓰라고 한다면 모두들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을 것 같다. 심판은 각 스포츠 협회 소속이고 대부분은 심판위원회가 심판관련 교육, 육성, 수급등의 역할을 하게 된다. 위원회는 회장 직속 기관으로 구성되고 그 역할과 범위가 정확히 정의되어 있다. 별도의 관련예산으로 주어진 역할과 책임범위 및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심판지원 자격이 공식적으로 공개되어 있으며 필기 및 실기시험도 쳐야 한다. 예를 들어 FIFA 공식 풋살(Futsal) 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5개의 test단계가 있고 각각 1000미터 달리기, 스피드 테스트, agility 테스트등을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 테스트인 1,000미터 달리기는 4분 이내 주파해야 한다.

이런 제도의 복잡함을 떠나서 스포츠 팬들은 심판에 대해서 별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심판의 실수나 편파판정으로 불이익을 당한 사례는 누구든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심판의 오심에 덕을 본 사례를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이건 선택적 기억인가? 당연한 심리적 기전인가? 아무리 잘해도 본전이라 하는 심판에 대해서 우리는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심판의 입장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

직업으로서의 심판은 결코 매력적인 일이 아니다. 그래서 심판은 가끔 범인 잡는 형사와 비교되곤 한다. 의심을 잘 할수록 인정을 받고 실력이 있다는 평가를 하게 되는 형사 또한 이 얼마나 불행한 운명의 직업인가? 심판은 완벽한 판정을 내려야 하지만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는 존재라서 결국 100%에 미치지 못하는 간극은 오로지 심판이 견뎌야 할 운명이 된다. 범인을 놓친 형사가 평생의 마음의 짐으로 가져가듯이 중요한 경기에서 결정적인 오심을 하게 되면 심판 또한 오랫동안 기억에서 떨치지 못한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NBA 미국 프로농구 심판들은 한 게임당 평균 5개의 오심을 한다고 한다. 경기 마지막 2분 동안 최소한 1개 이상의 오심이 발생한다는 통계도 있다.

필자도 10여년전 본인이 내린 결정적인 오심을 정확히 기억한다. 서울지역 예선이었고 엄파이어(Umpire)를 보던 나는 라인선상에서 볼 스냅과 동시에 수비수의 반칙을 보았다. 그 순간 A gap으로 공격팀이 러시 공격을 나왔고 리드 블럭이 완벽했던 공격팀은 러닝백과 세이프티가 1대1이 되는 상황이 되었다. 러닝백은 세이프티의 태클만 벗어나면 최소 20~30야드, 스피드가 충분하면 터치다운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 때 나는 플래그 대신에 귀신에 홀린 듯 휘슬을 불고 말았다. 그것도 수비팀의 반칙에 대해서...모든 선수는 플레이를 멈췄고 나는 그 순간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로 흘러내리는 것을 느겼다. 양팀 모두 중요한 게임이었고 박빙의 상황이었다. 지금도 심판으로 경기장에 들어갈 때면 부담감이 크다. 시합 전날 밤에는 다시 한번 룰북을 읽어본다. 심판의 휘슬 하나로 1년간 피땀 흘린 선수들이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아찔하다. 여러분은 역사적 오심이라고 한다면 어떤 장면을 떠올리는가? 

장면 하나.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이 있던 날. 우리나라 금메달 후보였던 김동성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런데 심판진들이 뭔가 논의를 하더니 주행중에 김동성이 미국의 안톤 오노의 진로를 방해했다고 판정, 금메달을 박탈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국인의 분노를 자아냈던 이 사건은 그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미국과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안정환과 선수들이 김동성의 쇼트트랙 장면으로 세르모니를 할 정도였다. 당신 안톤오노 역할을 이천수가 담당했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장면 둘.
2012년 런던올림픽 펜싱경기장. 세계랭킹 12위였던 신아람 선수는 시드를 배정받아서 32강부터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험난한 준결승 진출이었으나 상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독일의 브리타 하이데만 선수. 3세트 결과 14-14. 연장전으로 돌입한 두 선수는 연장전 무득점일 경우에는 경기중 우세했던 선수에게 부여하는 우선권을 가진 선수가 우승하게 된다. 동시타 또는 1분만 방어에 성공하면 결승진출되는 상황. 마지막 1초가 남은 상황에서 시작된 마지막 공방에서 방어에 성공한 신아람 선수는 승리를 자축했으나 심판은 다시 경기 재개를 선언하고, 시계는 멈추었다. 결국 심판의 터무니없는 오심에 승리는 상대선수에게 돌아갔고 그 경기를 TV로 지켜본 국민들은 혈압이 상승했고 신아람 선수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함께 고개를 떨구었다. 


장면 셋.
2019년 1월21일 NFC 챔피언십 경기에 나선 Saints와 Rams. 20대20 팽팽한 가운데 4쿼터. Saints 리시버 토미리 루이스 선수가 공을 받기 전에 Rams의 CB 니켈 콜먼 선수가 헬멧으로 들이 받았다. 분명히 누가 봐도 수비수의 반칙인 상황. 하지만 심판들은 이 반칙을 불지 않았다. 연장전 23대23에서 Rams는 57야드 필드골 성공으로 그 해 super bowl에 진출한다. 

 

시합이 끝나면 오심을 한 심판은 관객과 네티즌으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된다. 중요한 경기의 오심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특히 요즘엔 인터넷상에서 동영상으로 남게 된다. 최근에는 영상기술의 발달로 안방에서 심판들이 제대로 판정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볼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프로야구의 스트라이크 판정. 주심은 스트라이크 판정을 하고 타자 아웃을 선언하고 있는데 TV화면에서는 스트라이크 존 박스 밖으로 공이 나가 있다. 시청자로선 살짝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프로스포츠 중에 가장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MLB에서도 로봇심판을 시험하고 있다. 2019년부터 독립리그에서는 3년간 로봇 심판을 시험한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적어도 10년 내에 로봇심판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것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미식축구의 VAR시스템은 사람이 실수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제도로 도입이 되었고 이젠 미식축구를 넘어서 축구(Soccer)와 야구에서도 제도로 활용되고 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손으로 골을 넣은 소위 ‘신의 손’ 마라도나가 지금의 VAR 시스템이 있었다면 절대 인정되지 않을 골이었다. 미식축구의 경우에는 play off는 무조건 단판승부이고 워낙 게임의 집중도가 높다보니 80년대에도 VAR시도가 있었고 한가지만 빼고 가능했었다. 시간이었다. 아날로그 테입방식의 녹화화면을 바로 확인하기에 영상을 되감고 돌리는 시간이 걸려서 TV광고등과 밀접하게 방송 일정을 진행하는 NFL 입장에서는 도입할 수가 없었다. 결국 디지털 영상보관 기술이 발달한 최근에야 검색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가능했다. 

한국미식축구의 열악한 상황은 심판과 관련된 이슈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현직 감독이면서 동시에 심판인 경우를 다른 스포츠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최대한 모교의 시합엔 기피토록 심판배정을 하지만 심판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출신학교 심판으로 들어가는 경우 심판 입장에선 참 난감하다. 직접 비교할 바는 못되나 참고로 NFL 심판은 시합 24시간 전에 해당 도시에 도착해야 하므로 비행기 1등석으로 이동하고 비용은 리그에서 지원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두 full time 리그소속은 아니며 별도의 직업도 가지고 있다. 대우는 좋은 편이며 변호사 출신도 많고 대를 이어 심판을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시합에 임하는 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승리해야 하므로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소위 규칙의 틈새를 파고든다. 그런 틈새를 잘 활용하는 팀과 감독은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심판은 이러한 상황을 모두 예측하기는 힘들다. 상황이 발생하면 비로소 어떤 규칙을 적용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된다. 수비팀은 공격팀의 새로운 전술을 보고 비로소 반응하지만 심판은 팀들의 규칙의 틈새를 어떻게 파고드는지 상황이 발생해 야 비로소 대응이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모두가 동의하는 점은 심판은 경기에서 필수 요소이며 경기의 질(quality)을 결정하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 심판은 디즈니 영화에서 악당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승자의 승리를 모두가 인정하고 축하하는 바탕엔 심판의 공정한 판단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는 그렇다면 심판들의 오심(bad call)은 왜 나오는가에 대해서 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