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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석진우 컬럼

석진우 컬럼 _ 미식축구, 부상 그리고 승부

by HUEMONEY 2020. 10. 5.

코넷티켓 브리스톨 고등학교에 미식축구 괴물이 나타났다. 엄청난 기량으로 고등학생때 전국의 대학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은 초고교급 선수였다. 등번호는 85번과 81번을 주로 달았다. 그리고 플로리다 게이터스(Gators)의 주전 선수가 된다. 여기서 쿼터백 팀 티보(Tim Tibow)선수와 함께 엄청난 공격 듀오가 탄생한다. 두 선수는  NCAA 미식축구 전국 챔피언이 된다. 이후 20104NFL Draft에서 빌 벨리첵 감독과 톰 브래디가 이끄는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츠 선수로 지명이 된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가 있다. 자라면서 점점 자기를 무시하는 상대에게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엄청난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리고 대학생때 술을 먹다가 술값을 내지 않은 것에 항의하는 술집 매니저에게 주먹을 날린다. 항상 대마초에 취해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두 사람이 총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의 용의자가 된다. 이후 친구를 잔인하게 죽인 범인으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게 된다.

 

위 두 사람은 실은 동일인물이며 이름은 아론 헤르난데즈(Aaron Hernandez).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츠 타이트 앤드이다. 2012년 수퍼볼에서는 8개의 패스를 받고 그 중 하나는 터치다운이었다. 뉴욕 자이언츠에 2117로 패한 그 경기였다.

아론 헤르난데즈는 2012년 시즌 이후 살인사건으로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서 자살하여 생을 마감했다. 이후 유가족들이 아론 헤르난데즈의 뇌를 연구목적으로 연구소에 기증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헤르난데즈의 뇌가 일반인의 뇌와는 달리 외부 충격으로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망가진 모습이었다. 소위 만성 외상성 뇌병변(Chronic Traumetic Encephalopathy)라는 병이었다. CTE라는 이 병은 미식축구처럼 오랫동안 뇌에 지속적인 충격과 뇌진탕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어지러움은 물론, 기억력문제, 사회성결여,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나는 병이다. 물론 여기서 분명히 할 부분은 아론 헤르난데즈의 극악무도한 범죄를 단지 CTE가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NFL 미식축구 선수들의 뇌질환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샌디에고 차저스에서 오랫동안 뛰었고 뉴잉글랜드에서 은퇴한 전설적인 라인배커 주니어 세이아우(Junior Seau) 선수는 43세가 되던 2012년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 선수 역시 반복된 머리부상이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고 일설에 의하면 그의 미식축구 경력중 1,500번의 뇌진탕을 경험했다고 한다. 2017년 미국의 한 조사에 의하면, 15년 이상 미식축구를 했던 202명의 미식축구 선수들의 연구목적으로 기증된 사후의 뇌에서 87%CTE로 판명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보도되었다.

 

 

80년대 선수생활을 시작한 필자도 사실 이러한 위험에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헬멧이나 보호장구가 비싼 편인데다가 구하기도 쉽지 않아서 전용장비나 새장비는 꿈 꿀 수도 없었고 선배들에게 100% 물려받는 식이었는데 부서진 장비를 계속 수리하면서 쓰는 게 다반사였다. 당시에는 스포츠의학이나 근육회복의 생리학적 원리를 알지 못했던 시대였고 선수들의 뇌손상은 물론 모든 종류의 부상은 아예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조차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동료나 선후배들은 미식축구 경기 중에 뇌진탕으로 기억이 없는 상황을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자랑거리처럼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일주일에 한번 경기하는 시합일정은 90년대 중후반에나 나왔던 제도였고 당시에는 진통제를 먹고 무조건 뛰었던 시절이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선수시절 한번도 뼈를 다쳐 병원간 적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복학후 병원에서 찍었던 발목 X-ray에서 의사 선생님이 금이 가거나 부러진게 언제냐고 뼈가 다시 접합된 자국이 있다고 물어봐서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이건 결코 무용담이 아니다. 무지한 것이고 무모한 것이며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모든 스포츠는 부상의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스포츠의 기원은 군인들의 전쟁 훈련용 놀이였고 스포츠 시합은 부족간 전쟁이었다는 역사학자의 이야기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상상치도 못한 최악의 사고가 스포츠 경기중에 종종 발생하곤 한다. 2012년 이탈리아 리보르노의 미드필더 피에르마리오 모로시니는 경기중 심장마비로 결국 유명을 달리 했다. 이 사건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불턴 원더러스의 파브리스 무암바가 경기 도중 심장 발작으로 쓰러졌다가  의식을 회복한 뒤 불과 한 달여 만에 다시 일어난 사고다. 한국의 오랜 야구 팬들 사이에는 경기중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었던 롯데 자이언츠의 임수혁 선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미식축구가 다른 현대 스포츠와 다른 것은 선수간 물리적인 충돌과 몸싸움이 기본인 스포츠이고 솔직히 폭력적인 스포츠이며 다른 종목들과 비교해서 부상의 위험성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선수보호 측면 보다는 관객입장에서 그리고 마케팅 측면에서 더 공격적이고 점수가 많이 나서 재미있는 경기내용이 유지되는 방향으로 오랫동안 제도와 규정이 유지되었다는 것이 큰 문제점이었다.

 

경기중 부상에 대해서 방지차원에서 미리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 NFL은 선수보호를 위한 규칙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각 구단은 심리상담 전문가부터 의료전담팀까지 선수들의 건강을 위한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최근까지도 NFL 선수노조는 구단들이 선수들의 뇌손상에 대한 위험을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2015년에는 이러한 내용의 실화를 소재로 한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Concussion까지 나왔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식축구 선수보호를 위한 노력은 팀 차원이든 협회차원이든 계속해 왔다. 대회가 시작되면 매주 3게임씩 하고 매년 20게임 이상을 하던 혹독한 일정이 단일 리그로 바뀌고 주말 경기로 치뤄지고 있다. 충분한 휴식이 가능해 졌고 지친 근육이 회복할 시간이 주어졌다. 장비는 과거보다 더 좋아졌고 인터넷을 통해서 좋은 보호구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비싼 가격은 여전히 부담이다.- 블로킹과 태클, 위험에 노출된 포지션의 선수를 보호하는 규정들이 많이 강화되고 신설되었다. 과거엔 멋진 플레이로 평가받는 것이 지금은 절대 해선 안 되는 반칙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 비인기종목인 미식축구에 대해서 대부분의 학교는 팀운영을 위한 충분한 예산을 지원해 주지 않고 있다. 열악한 운동장 상태는 선수들의 테이핑하지 않은 발목과 무릎을 항상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충분히 몸을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투입된 선수들은 머리가 아니더라도 어디든 근골격계 부상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특히나 선수층이 열악한 팀의 선수들의 부상위험은 밖에서 보기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 경기중 큰 부상이라도 발생하면 상주하는 의료진과 앰블런스가 없어서 119에 전화를 해야 한다. 어떤 경기장엔 앰블런스가 들어오지도 못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있다. 이런 모습을 보는 관중들은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다. 많은 선수들과 코칭 스탭은 일정부분 희생을 치르더라도 승리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댓가 없는 영광은 없다는 생각이다. 웬만한 부상은 영광의 상처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도 많다. 스포츠 경기에서 우리의 건강을 희생하거나 서로 다치게 하고 얻을 만큼 가치 있는 영광이란 과연 무엇인가? 다른 것은 양보하고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선수들의 심각한 부상, 장애, 뇌손상은 결코 승리의 댓가로 내 줄 수 없다. 모든 미식축구 선수들이 부상 없이 건강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선수가 보호되지 않으면 미식축구는 결코 인류 최후의 스포츠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