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컬럼/석진우 컬럼

통계, 맹신할 것인가 무시할 것인가? -스포츠에서 통계의 의미-

by HUEMONEY 2020. 12. 9.

여기 야구에서 이번시즌 3할을 치는 타자가 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팀의 감독이다. 이 선수는 앞선 7번의 타석에서 안타가 없었다. 그리고 8번째 타석이다. 그러면 이 타자는 시즌 평균타율이 3할이므로 8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칠 확률이 올라가는 것인가? 그래서 타석에 서도록 해야 하는가? 아니면.. 앞선 7번의 타석에서 안타가 없었고 당분간 안타가 안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대타를 세우는 것이 현명한가? 타율을 믿어야 하나 최근의 상황과 흐름을 고려해야 하나?

스포츠와 통계 데이타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특정 스포츠는 통계 그 자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야구가 그렇다. 야구는 통계의 스포츠라고 한다. 타자가 타석에 서면 온갖 통계수치가 자막에 뜬다. 평균타율, 최근 10경기 타율, 주자가 있을 때 타율과 없을 때 타율, 2 스트라이크 이후에 안타를 칠 확률, 지금 마운드에 올라가 있는 투수와의 상대 타율등등..최근에는 전통적으로 집계하는 통계수치가 선수의 능력을 포착하기에 부족하다 하여 세이버 메트릭스(Sabermatrics)라는 야구의 새로운 통계기법을 통해 타자들의 팀승리 기여도까지 계산 하는등(WAR이라고 한다) 온갖 통계지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오클랜드 야구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머니볼’에서 빌리 빈 단장이 바로 이 통계를 통해 무명 선수들을 발굴해서 팀 승리에 기여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스포츠와 통계의 속성을 이용하여 각자 계산한 특정 경기의 승률에 의거해서 경기결과에 대해 친구끼리 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심각한 도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스포츠 빅이벤트 경기의 승부는 도박사의 베팅을 보고 짐작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수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개최국 브라질이 독일에 7대1로 패한 경기는 스포츠 도박에서 배당률이 2,319배였다. 하지만 도박사들이 마이크 타이슨의 승리를 10대1로 예상했다면 절대 상대 선수에게 베팅해서는 안된다. 

현대 스포츠에서 보여주고 있는 큰 경향중 하나가 바로 과학화의 흐름이다. 이런 흐름과 더불어 우리의 선입견을 날려버린 대표적인 스포츠가 축구일 것이다. 최근까지도 축구에서 무슨 통계가 나오나 싶었다. 그런데 패스 성공률, 점유율, 총활동거리부터 특정 선의 운동장 사용도면까지 자세히 나온다. 경기가 끝나면 축구선수가 운동장 전체를 누비고 다닌 결과값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xG(expected goals), packing, impact등 다양한 지표들이 집계되고 분석되고 있다. 손흥민 선수의 xG값이 0.44라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가?  

NFL도 예외가 아니다. 선수들만 해도 한 시즌 총전진 야드수, 플레이당 전진야드수, TD수등등. QB의 경우에는 QB rating이 의미있는 통계였고 INT 개수도 알 수 있다. 수비수는 QB sack의 개수등도 통계에 잡힌다. NFL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팀별 다양한 통계를 알 수 있고 심지어 반칙 개수와 반칙 야드 수까지 ranking list가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통계 지표가 개발되고 집계된다. 

 

스포츠 통계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팀을 잘 파악하고 상대팀과의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기초 데이타로서의 통계이다. 다른 팀의 통계자료가 없어서 부득이 내가 감독으로 있던 2013년 고려대 기록을 예로 들어보겠다. 2013년 더블윙 포메이션으로 고려대가 예선과 본선 7경기를 통해 공격 득점이 총 208점이었고 경기당 평균은 29.7점이었다. offense 전진 야드수는 경기당 210야드에서 최고 408야드, play당 전진 야드수는 서울추계 결승전의 경우 9.6야드, 부산대와의 전국4강전에서도 8야드가 넘었다. 그 해 통계와 관련해서 당시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다. Tigers가 TD 이후 항상 2 point 플레이를 했더니 누군가가 감독인 나에게 kick을 차는게 낫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대답했다. 이번 시즌 2 point 성공률이 60% 정도 됩니다 라고..설명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해를 못하시는 것 같아서 다시 말씀드렸다. “10번의 TD를 한 팀이 킥을 차서 100% 성공해도 얻는 점수는 +10점입니다. 하지만 10번의 TD 이후 2 point play로 60% 성공률을 보인다면 +12점을 획득하게 됩니다. 우리팀의 경우 킥을 찰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많은 감독들은 머릿속에 여러 가지 통계숫자와 기준 그리고 경험치가 함께 녹아 있다. 미식축구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지표중 하나가 바로 pass play 성공율이다. 장비 착용없이 우리팀의 QB가 리시버에게 던진 패스가 70% 정도 성공한다면 실전에서 시도할 것인가? 장비와 헬멧을 착용하고, 수비수가 있고, 시간이 촉박하고, 수비 라인맨들이 압박하는 상황을 모두 감안한다면 편한 상태에서 그냥 연습에서 던진 패스가 70%일 때 실전에선 얼마나 그 성공률이 떨어질 것인가? 국내 모 감독님은 연습때 성공률이 80%가 되지 않는 패스는 실전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두 번째는 팀이나 선수들의 업적과 훌륭한 퍼포먼스를 기념하기 위한 통계이다. 어느 팀이 통산 100승이라던가, 어떤 선수가 100번째 TD를 찍었다던가 하는 것이다. NFL에서 최장 kick 성공은 2013년 64야드 필드골을 성공시킨 Matt Prater 선수이다. 60세 나이로 최근 운명을 달리한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마리도나는 A매치 91경기를 출전해 34골을 넣었다. NBA에서 통산 최다득점은 38,387점을 넣은 카림 압둘자바 선수이다. MLB 칼 립켄 주니어 선수는 2,632경기 연속 출장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선수 개인으로서도 영광일 뿐만 아니라 대단한 기록을 보는 팬들은 그 선수의 성실함과 열정을 그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으며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경의를 표한다.

통계와 기록은 영원히 남는 것이라 팀 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도 영광이지만 기록을 위한 무리한 경쟁과 의도적인 기록 만들기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96년 11월 달라스 카우보이스는 그린베이 페커스를 맞이하여 키커 Chris Boniol선수가 당시 한경기 최다기록인 7개의 필드골을 성공시켰다. 당시 라이벌이었던 두 팀은 마지막 카우보이스의 필드골은 승부가 이미 결정된 상태인 4쿼터 20초가 남은 상태에서 QB가 time out을 부르고 시도한 것이라 경기직후 Reggie White 선수와 Michael Irvin 선수간 심각한 충돌과 언쟁이 있었다. 부끄러움은 잠깐이고 기록은 영원하다고 했던가? 하지만 이 기록은 2007년 타이탄스의 Bironas 선수의 한경기 8개의 필드골로 깨지게 된다.



우리가 이미지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제는 다른 경우가 많다. 혹시 NFL 통산 펀트 리턴 야드수가 가장 많은 선수라고 하면 누가 생각나는가? ‘Prime Time’ 디온 샌더스선수가 생각나는가? 아니면 펀트 리턴 플레이로 수퍼볼 MVP까지 받은 데스몬드 하워드? 아니다. 정답은 브라이언 밋첼선수로 14년 프로경력동안 무려 4,999야드를 뛰었다. QB의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로 QB rating이 있다. 역대 가장 높은 선수는 Tom Brady도 Joe Montana도 Dan Marino도 아니다. Green Bay Packers의 현역 주전 QB인 Aaron Rodgers 선수로 무려 103.1이다. 

내가 감독시절 존재감이 별로 없어 보였던 선수가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매니저가 집계한 통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태클숫자가 선배들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수비통계의 경우 그 기여도와 관련한 지표를 정확히 현장에서 파악하기 쉽지 않다. 특히 태클의 경우 일일이 가담한 선수들을 확인해야 통계가 나온다. 그래서 감독인 나도 놓치고 있었다. 이렇듯 정확한 통계는 흙속의 진주를 발견하게 도와주기도 하고, 막연한 이미지를 걷어내기도 한다.

현명한 감독이라면 기록, 통계, 숫자를 맹신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무시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결국 이 모든 숫자들도 사람이, 선수들이 만들고 깨고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막연한 느낌과 감각만으로 팀의 전략을 세워서도 안되겠지만 숫자와 통계만을 보고 선수들을 예단한다면 그 팀 또한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한국 미식축구는 경기기록과 통계는 항상 우선순위에서 가장 마지막이었다. 각 협회와 개별 팀들은 기록을 잘 보존하고 통계를 집계한 노력이 있어왔고 지금도 있으나 리그 전체 차원에서의 접근은 항상 제한적이었다. 

일부 팀에서는 경기후 스카우팅 목적으로 세부적인 경기통계를 활용하기도 한다. 한국 미식축구도 선수들과 팀의 기록과 통계가 잘 집계되고 대단한 기록의 주인공들은 축하해주고, 감독들은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선수들의 숨은 능력을 발견하여 멋진 경기를 만들어 주는 환경이 빨리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혹시 아는가 몇 년 내에 국내 미식축구 인터넷 방송에서 ‘OOO선수가 방금 플레이로 올 시즌 1,000야드를 돌파했습니다’라는 멘트를 하게 될지.